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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nder

1. 스케치업 모델러가 블랜더를 배우기 시작한 이유

by 앤틀러스튜디오 2024. 1. 9.

 

 

   나는 대학교를 다닐 때 처음 스케치업을 접했었다. 그게 2011년 정도였으니 스케치업을 사용한 지 벌써 13년 정도가 된 샘이다. 스케치업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덕분에 동호회에도 나가게 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 많은 도움도 받았으며. 그때 배운 것들로 취직도 했었고 심지어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먹고살고 있으니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고마운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프리랜서 3D모델러이다. 렌더링은 거의 작업하지 않고 스케치업만 사용하여 모델링을 진행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다른 다양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들과는 조금 방향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물감과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필하나만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같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부족한 능력으로도 어찌어찌 먹고살고 있는 것은 그 시기에 그에 맞는 수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운이 좋았던 거지.

 


Sketchup Image1 ⓒ 2024. Antler sudio all rights reserved.

 

   다른 3D모델링의 경우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쪽으로 전문화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사실 나도 그쪽 전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기는 하다) 그런데 스케치업 3D모델링의 경우 유독 인테리어나 소규모 건축 그리고 웹툰 배경 쪽으로 특화가 되어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우기 쉽고 기본적인 조작법의 경우 3D프로그램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조차 30분 정도만 프로그램을 만져봐도 알 수 있기 때문이고 이렇게 단순하고 직관적인 모델링 방식에 따라서 숙련도가 부족해도 작업속도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이다. 

   3D프로그램에 대한 숙련도에 시간을 쏟기 어려운 웹툰작가들로 인해 스케치업 배경에 대한 수요가 생겼고, 빠르게 도면을 시각화하여 고객들과 미팅하고 잦은 수정을 해나가야 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에 의해 모델링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좀 더 시간과 비용의 여유가 있는 작업의 경우 렌더링까지 진행해서 더 사실적이고 멋진 이미지를 뽑아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3D작업은 필요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공을 들일 필요가 없는 작업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Sketchup Image2 ⓒ 2024. Antler sudio all rights reserved.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의 "우도할계"라는 말이 있다.(나도 사자성어는 이번에 처음 찾아봤다) 작은 일을 함에 그에 맞지 않는 과하게 큰 도구를 쓴다는 말로, 소 한 마리가 아니라 닭을 100마리 잡아야 되는 사람이 소칼을 들고 닭을 잡으려 든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닭 잡으러 뛰어다니다가 닭보다 먼저 숨질 확률 100%). 이처럼 스케치업은 비유하자면 내게는 닭 잡는 칼 같은 느낌이었고, 나는 닭을 잘 잡는 사람으로 살아왔었다.

   그렇게 닭도축 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가 왜 갑자기 다른 도구가 필요 해진 건가? 그건 항상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 있는데 뭔가 이 프로그램자체가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몇 번이나 다른 회사에 팔려다니기도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개발자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매년 프로그램은 버전만 바뀔 뿐 기능의 추가라던가 달라지는 부분은 거의 없으며 프로그램을 어떻게 팔아먹을지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다는 느낌만 계속 받는다. 프로그램의 열악한 기능은 대부분 루비(확장 프로그램)로 메꿔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프로그램 UI는 항상 너저분하다. 그게 지금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AI가 이미지는 물론이고 3D모델링까지 뚝딱뚝딱 찍어내고 있는 2024년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스케치업 모델러인 나도 10년 전의 기술적 역량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고, 진작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워서 내 능력을 더 키우지 않았는가에 대한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다.

 


   3D모델링 툴에도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고, 모델링이 아닌 브이레이나 엔스케이프로 넘어가서 랜더링을 파볼까? 혹은 루미온이나 트윈모션으로 넘어가서 애니메이션이나 실시간 렌더링을 파볼까? 등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지금의 결정으로는 블랜더를 선택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3D에 관련된 대부분의 기능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점도 크게 작용했고(그렇다고 하더라). 프로그램을 배우는데 첫 걸림돌이 되는 프로그램 가격도 무려, 무료. 평생 무료. 이것도 무시 못할 부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스케치업모델링을 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곡면 또는 비정형 모델링에 대한 갈망도 큰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시작하게 된 블랜더 배우기 프로젝트를 그냥 혼자 하지 말고 블로그 포스트로 남겨보면 어떨까 하고 이렇게 첫 포스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당시간 방치된 블로그 심폐소생술이기도 하고) 물론 나는 아직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대충 유튜브 영상 몇 개 보고 나무위키나 좀 읽어본 뉴비로써, 거창할 것 없는 블랜더 첫걸음을 이렇게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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